지상병담(紙上兵談)
7개 나라(7웅)가 치열하게 전쟁을 하던 전국시대 말. 강국 조나라에는 조사(趙査)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탁월한 병법으로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를 거듭하자, 조나라 혜문왕은 조사를 마복군(馬服君)에 봉하여 그의 공을 기리며 치하했다.조사에게는 조괄(趙括)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병서를 끼고 살며 수많은 병서와 병법에 통달하여 아버지인 조사조차 병법에 관한 한 조괄에게 두 손을 정도로 그의 이론은 탁월했다.백전 노장인 아버지 조사에 비해서도 병법에 관한 논쟁에서는 오히려 뒤지지 않는 조괄로서는 적어도 병법에 관한 한 천하에 자기를 이길만한 자가 없다고 자부하며 기고만장 하였다.조사의 부인은 아들의 탁월한 병법과 논리를 기뻐하며 조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고 띄워주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식자랑을 했다. 그러자 남편인 조사는 부인을 불러 자식자랑에 대한 부분을 엄중히 나무라며 이렇게 말한다.“전쟁은 생명을 걸고 싸우는 위험한 일이며,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확한 상황판단과 결단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조괄 저놈은 병법서에 적힌 그대로의 이론과 토론에만 능하니 이는 단지 지상병담(紙上兵談)일 뿐이다. 조나라가 만일 저놈에게 군의 통수권을 주어 대장으로 삼는다면 패배는 틀림이 없다.”세월이 흘러 기원전 259년 욱일승천의 기세로 전국의 여러 나라를 격파한 진(秦)나라 군대는 조나라를 침공하여 진과 조는 장평(長平)에서 공방을 거듭하고 있었다. 진의 장군은 왕흘(王紇)이요, 조의 장군은 백전 노장 염파(廉頗)였다.
진군의 강대한 군사력을 본 염파는 장평성에서 굳건히 수비만 할 뿐 나와서 응하질 않았다.지구전과 장기전은 원정을 온 진나라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염파는 이를 노린 것이다. 전장의 상황이 명장 염파로 인해 꼬이자 진의 수뇌부는 새로운 계략을 획책하여 간첩을 조나라 전국에 풀어 유언비어, 헛소문을 퍼뜨린다. “진나라는 늙고 힘없는 염파는 두려워하지 않지만, 마복군 조사의 아들인 천재적 병략가 조괄을 두려워하며 조괄이 출정을 하면 진나라 군대는 괴멸 되고 망할 것이다.“이 소문은 당장 조의 국왕인 효성왕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결국 전장에서 별 성과 없이 수비만하는 염파를 불러들이고, 조괄에게 대장군직을 맡겨 군의 통수권을 주어 장평으로 파견한다. 재상 인상여(蔺相如)는 조왕에게 극구 만류하며 간한다. “실전경험이 없는 조괄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조 효성왕은 이 간언을 듣지 않고 조괄을 더욱 신임하여 금품과 비단을 하사하며 출정을 시킨다.조왕의 전폭적인 신임과 헛소문에 조괄은 정말 진나라가 자신을 두려워 하며, 진을 멸할 장군은 자신뿐 이라고 생각하면서 출정을 서두른다. 많은 금품과 하사품을 받은 조괄은 출전 당일 전날,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랑을 하며 자신 만만해 한다. 상황이 급박해짐을 알게 된 조괄의 어머니는 급히 조왕을 배알하러 궁에 들어 가 조왕에게 말하였다.“저 애를 대장군에 봉하여 출전시키면 안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패배 할 것이라고 제 남편인 마복군이 항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조왕은 “이미 정해진 일이고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장수는 그대의 아들인 대장군 조괄이니라,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 .” 20만의 증원군을 이끌고 장평전선에 나간 조괄은 기존 병력 20만에 더한 40만 군대의 편제와 전략, 전술을 자신이 배워 온 병법서대로 전면 수정하여 진군에 맞서게 된다.
진나라에서는 염파가 좌천되고, 조괄이 사령관으로 장평전선에 부임되어 왔다는 소식을 듣자 진의 최고 명장이자 무적불패의 상승장군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를 전선에 파견한다.
백기는 조괄을 전선에 끌어내기 위해 싸움에 패하는 척 유인해 뛰쳐나온 조의 주력 정예병을 무력화 시키고, 조나라 40만군대의 모든 보급로와 군수품을 차단시키어 완전히 가두어 버린다. 조괄은 여러 번 포위를 뚫으려고 시도를 해 보았지만 번번히 백기의 능수능란한 계략에 말려 수많은 병사들을 잃고 결국은 조괄 자신도 화살을 맞고 전사한다.지휘관을 잃은 조나라의 군대는 포위 당한지 46일 만에 전면 항복을 하여 진군에게 무릎을 꿇는다. 백기는 조나라 군대 40만에 대해 노심초사 고민 끝에 모두 죽일 것을 명하고, 나이어린 병사 240명만 조나라로 돌려보내 진의 무시무시한 위엄을 알리게 한다. – 사기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중 -결국 40만의 조군은 백기의 명에 따라 구덩이 속에서 살아 있는 채로 생매장 당하고 만다.후일 장평대전 장소에서 40만에 해당하는 인골이 발견 되어 역사속의 참상이 허위가 아닌 실제였다는 게 증명이 되었다고 한다.